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부


 본문 / 에베소서 5:33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저는 지난 몇 주 동안 계속해서 '가정에 대해서', '행복한 부부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설교가 수많은 성도님들에게 축복이 되었음을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제가 설교한 그대로 순종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남편을 격려하고, 칭찬하며, 존경했더니 매번 자격증 시험에 불합격만 하던 남편이 아내의 격려와 칭찬으로 합격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몇 년 동안 분방하면서 지냈던 한 부부는 '분방하지 말라'는 저의 설교를 듣고 드디어 합방을 했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힘든 가정의 문제가 회복되고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변화되어가는 이런 모습을 볼 때 감사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일평생 헌신하며 ! 살기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사랑은 달콤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희생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주는 것이 없는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천지와 만물을 사랑하시고 다 주셨습니다. 저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로마서 5:6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 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신명기 10:12~13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명령도 하시고 규례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아낌없이 주고 희생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결혼할 때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장가도 못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부잣집 딸이 시집을 왔습니다. 장모님께서는 가난한 목사에게 시집가는 딸을 걱정하셨는지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잣집 딸하고 결혼한 것을 알고, 친척들이 제게로 와서 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친척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돈이 들어있는 통장과 인감도장을 꺼내어 그 돈을 달라는 사람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기에 남편을 위해서 그것을 다 내어 준 것입니다. 저는 아내에게 사랑의 빚을 지었기에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거나 돈이 생기면 아내에게 다 갖다 바칩니다. 그렇게 해도 아내의 사랑을 평생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는 이도령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조를 지킨 춘향이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는 목숨도 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과 비교하여 전혀 치우치지 않는 소중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부부의 사랑을 열매 맺게하는 '사랑의 말'입니다. 이 말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스튜어트 체이스는 '바다 속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가 물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듯이,! 사람은 말의 바다에서 살고 있지만 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말을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말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인간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관계가 맺어지기도 하고 나쁜 관계가 맺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랑하는 관계가 되기도 하고, 미워하는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친구가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통치하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세상이 되기도 하고, 좋지 못한 세상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나라가 되기도 하고, 좋지 못한 나라가 되기도 합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가정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합니다.

 솔로몬은 잠언 18:21에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말은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이 말 한마디가 사람을 치유하기도 하고, 변화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사랑이 담겨 있으면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입니다. 작은 선물 하나도 사랑이 담긴 선물은 아름답습니다. 작은 봉사를 하더라도 사랑이 담겨져 있는 봉사는 아름답습니다.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이 말 한마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담겨 있는 말 한마디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 천사와 악마의 차이는 모습에 있지 않고 말에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하는 말이 악마 같은 인간인지, 천사 같은 인간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좋지 못한 말을 하면 좋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말을 만들었지만, 말은 인간을 만듭니다.

 여러분은 어떤 세상이 가장 살기 좋은 행복한 세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이 많은 세상입니까? 지하자원이 풍부한 세상입니까? 기후가 좋은 세상입니까? 경치가 아름다운 세상입니까? 모두 다 아닙니다. 이런 조건만으로는 행복한 세상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세상이란 좋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입니다.

 여러분, 돈이 아무리 많 으면 뭐합니까?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기후가 좋고 경치가 아름다우면 뭐합니까? 악한 인간들이 많은 세상이라고 하면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바로 지옥입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좋은 사람입니까?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만큼 말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말을 하는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좋은 말을 하는 좋은 사람이 행복한 가정을 만듭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1. 감사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를 원한다면 좋은 말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부부 사이에서도 감사해야 할 말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부부 사이에도 항상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와 살아준 게 고마워.' 항상 '고맙다'는 말을 하고 사십시오. 그러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2. 칭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칭찬할 것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칭찬할 것이 무엇인지 찾으면서 산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칭찬을 하면 그 말만 듣는 사람만 기쁘고 행복한 게 아닙니다. 칭찬하는 나 자신도 기쁘고 행복해 집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고 하면, 칭찬하는 말을 찾아서 칭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웃음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말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웃음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말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웃음이 떠나지 않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에 다닐 때, 굉장히 가정이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저의 여동생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여동생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아침식사 때 마다 했습니다. 집안은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저의 집안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한 번은 학교수업시간에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동생이 초등학교 일학년 담임을 했는데, 학생들에게 일기쓰기를 숙제로 내주었답니다. 그 다음날 숙제검사를 하다가 반장에게 "너 앞에 나가서 어제 쓴 일기 읽어라."고 시켰더니 반장 녀석이 자기 일기장을 읽는데 , 일기장을 얼굴에 바짝 붙이고 읽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제 여동생이 일기장을 조사해 보니,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는 것입니다. 일기를 읽어보라고 했더니, 일기를 안 쓴 반장은 거짓말로 일기를 지어서 읽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가족들은 아침밥을 먹다가 웃음보가 터져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언제나 담장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소문이 나자 동네 사람들이 "가난한 이 동네에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저 집은 저렇게 항상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나."고 하더랍니다. 여러분, 항상 웃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웃으면서 살면 얼마나 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웃음으로 병을 고치는 웃음치료법은 왜 좋을까요?

 장수하게 하는 웃음치료법, 왜 좋을까요?

* 웃으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활성화시켜 주고 강화시켜 줍니다.

* 스트레스와 관련된 최소 네 가지의 호르몬을 감소시켜 줍니다.

* 더 많은 산소를 들이마시게 하고, 횡격막을 점검해 주며 산소를 이용하는 능력을 증가시켜 줍니다.

* 근육을 이완시켜 줍니다.

* 오래 지속되어 온 통증을 상당량 경감? 시켜 줍니다.

* 혈압을 낮추고 고혈압을 예방합니다.

* 폐로 들어온 공기를 완전히 비워줌으로써 호흡을 개선시켜 줍니다.

* 부작용이 전혀 없습니다.

* 처방전 없이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돈이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정이 행복해지려면 항상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말을 하십시오. 가족들을 즐겁게 해주는 재미있는 말을 찾아서, 항상 웃음이 가득한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서로의 좋은 점을 찾아야 합니다.

 사랑의 말은 언제나 좋은 점을 발견하는데서 나옵니다. 일본의 어떤 중년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의 생김새가 변변치 못한 것을 늘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뜰 앞에 아름답고 잘생긴 닭 한 마리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내는 혼자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소원이 전 일본에서 가장 잘나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하였는데, 이제 다 틀렸구나." 그 때 이 말을 엿들은 남편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일본에서 제일 가는 미인과 결혼하고자 늘 원하였는데, 내 소원대로 과연 당신과 같은 미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오." 이 남편은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이런 남편의 말을 들은 아내는 그만 부끄러워져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미안해요. 아까 한 말은 농담이지 진심이 아니에요. 저도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몰라요."



5.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맞벌이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늦게 귀가하는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이 반갑게 맞아주길 바라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나 같은 심정입니다. 어느 날 아내가 무척 힘들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먼저 귀가한 남편은 아내가 신발을 벗자마자 "여보, 나 커피!"라고 말 한 뒤 계속 T.V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는 슬그머니 화가 났습니다. 힘들기는 서로 마찬가지인데 "힘들었지? 밥은 먹었어?"라는 다정한 말은 커녕 커피 심부름부터 시키는 남편이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섭섭한! 마음이 드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이런 생각을 주셨다고 합니다. '아니야,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니 커피 한잔을 함께 마시고 싶었나 봐.' 그렇게 생각을 바꾸자 아내의 기분이 좋아졌고 부부는 행복한 커피타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 행복도 불행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6. 서로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성공할 거예요.",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세요.", "당신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요.", "당신을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을 받을 거예요." 언제나 이렇게 축복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7.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남편과 아내 둘 다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제가 예수 믿기 전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에 큰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존경받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키가 크신 분이셨는데, 사모님은 키가 아주 작았습니다. 더운 여름날 교회를 가실 때는 꼭 저희 집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그런데 키가 작은 사모님은 목사님이 햇빛에 그을릴까봐 발끝으로 걸으며 키가 큰 목사님에게 양산을 씌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매 주일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점잖게 가방을 들고 가시고, 사모님은 목사님의 얼굴이 햇빛에 탈까봐 애쓰시는 모습이 딱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가 되고나서야 사모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나처럼 목사님을 섬기라고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목사님은 교회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모님도 일등 사모님이라고 소문이 나서, 사모님 역시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부부지간에 서로 높여주고 서로 섬기면 함께 존경받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시집가는 딸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네가 계집종처럼 처신한다면 남편! 은 너를 노예처럼 다루고,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한다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할 때는, 목욕도 하게 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놀러 올 때에는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소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

 여러분, 심은 대로 거둡니다. 남편을 존경하면 하늘의 면류관을 쓴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말입니다. 하루는 랍비가 시장에 가서 제일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더니, 이 제자는 소 혓바닥을 사왔습니다. 며칠 후에 랍비가 제자에게 "시장에 가서 제일 값싼 것을 사와라"고 심부름을 시켰더니, 또 소 혓바닥을 사왔습니다. 랍비가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지난번에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도 혀를 사오더니, 가장 싼 것을 사오라고 하는데도 혀를 사온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자 "혀는 잘 사용하면 그보다 달콤하고 좋은 것은 없지만 반대로 함부로 사용하면 그보다 값어치 없고 나쁜 것?! ?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제자는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좋은 말만 하는 좋은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좋은 말만 하면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는 비결




 본문 / 베드로 전서 3:1~7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왜 결혼하십니까'하고 묻는다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부부가 되어 일평생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고 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혼자 살아서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합하여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소중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가정이 진정 행복한 가정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가정이 진정 행복한 가정인지 가르쳐 줍니다. 잠언 15:13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15절을 보면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행복한 가정이 어떤 가정일까요? 행복한 가정은 가족들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에 산다고 하면 비록 초가집에 산다고 해도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세상의 낙'입니다.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차 타고 다니며 모든 세상의 향락을 누리면서 사는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세상 낙을 누리며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누구보다 세상 낙을 누리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솔로몬보다 더 세상 낙을 누리면서 살았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낙을 누린 솔로몬은 말합니다.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도서 2:8~11)』

 솔로몬은 세상의 낙을 누리면서 살려고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 짓이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계속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전도서 2:17)』

 솔로몬은 세상 낙을 누리면서 살면, 더 기쁘고, 더 즐겁고, 더 행복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상 낙을 실컷 누리고 나서 돌이켜 보니 너무나 괴로워 사는 것조차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세상 낙을 추구하는 분이 계시다면, 이 솔로몬의 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낙이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절대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 낙을 추구하다보면 죄를 많이 범하게 되어 엄청난 고통이 따라 오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지고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배우였던 마르린 몬로는 세계 최고의 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기도 최고였습니다. 돈도 엄청 많이 벌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좋은 것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하지만 마르린 몬로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나 괴로워 약을 먹고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세상 낙은 절대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행복을 주는 낙은 신령한 낙입니다. 신령한 낙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신령한 낙은 영원히 행복하고, 영원한 만족을 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이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신뢰하며 사는 자에게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잠언 15:16~17을 보면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원한다면?

1. 하나님을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행복한 부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시길 바랍니다. 항상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도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복을 우리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가 함께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신구약 성경을 통독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전에 부부가 손을 잡고 적어도 10분 동안은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번갈아 가며 날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이렇게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해서 많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한 분들의 간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15:17을 보면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서로 미워하느냐 사랑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을 하면 모든 것이 다 좋게 보입니다. '사랑하면 예뻐져요.'라는 노래도 있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얼굴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넘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사랑보다는 돈을 보고 결혼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떤 청년이 우연히 소원성취의 요정이 들어 있는 요술 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이 청년이 요정을 불러내자 요정이 나와서 "주인님, 무슨 소원을 들어 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말했습니다. "나는 돈과 여자와 결혼을 원한다." 청년의 소원을 들은 요정은 곤란한 듯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세 가지 소원을 한꺼번에 들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하세요. 세 가지 모두를 갖고 싶었던 청년은 꾀를 내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돈 여자 결혼!" 청년의 짧은 대답을 들은 요정은 "예, 주인님 알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소원이 이루어졌는데, 그 청년은 돈여자(실성한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이처럼 사랑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돈 밖에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3. 서로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이 말 한 마디가 어떤 때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 18:21을 보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서로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서로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 맛이 없어도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애."라고 말을 하고 먹는다면, 음식을 만든 사람의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요! 먹은 뒤에는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잘 먹었어요." 라고 말해 보십시오. 가정에 웃음꽃이 피고 행복해 집니다. 얼굴이 좀 못생겼어도 "난 이 세상에서 당신처럼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어. 당신은 볼수록 예뻐." 이런 말을 하십시오. 정말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여러분, 행복하게 해주는 말이 보약보다 낫습니다. 항상 좋은 말, 행복하게 해주는 말만 골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 자매는 남편과의 불화로 한 순간도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전도를 받아 교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서로 서로 칭찬하며 사세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대로 남편을 칭찬해 보려고 했지만, 남편이 하는 행동을 보면 칭찬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남편을 칭찬할 수 있게 장점을 보이게 해 주세요." 하루는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데, 오렌지색 티셔츠가 멋있게 보였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에게 "여보, 오늘 당신 얼굴이 환하게 보이는데요."라고 칭찬의 말을 했더니, 남편이 깜짝 놀라서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늘 아내에게 비판만 들어온 남편은 너무 기뻐서 "별 소리 다 듣네."하면서 껄껄 웃었습니다. 그 날 이후부터 이 자매는 하루에 한 가지씩 남편의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남편은 아내를 따라 교회에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를 잘 믿는 화목한 가정이 되었답니다.

 어느 마을에 두 청년이 있었는데, 그들은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습니다. 한 사람은 결혼을 하자마자 매일 한 가지씩 아내의 단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아내의 장점은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단점만 고치면 완벽한 아내가 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그 가정에는 하루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은 아내의 장점을 찾아내어 하루에 한 가지씩 칭찬을 했습니다. 물론 아내에게는 많은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단점은 남편인 자신이 채워주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늘 장점만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가정에는 늘 웃음꽃이 피었고 부부는 더 없이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해 주면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단점을 지적하면 오히려 더 나빠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여인 가운데 패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미모와 지식과 재주가 대단했습니다. 거기다가 말을 잘 해서 사람들을 웃기고 언제나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남편은 점잖고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패티에게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편의 부족한 점, 실수한 점을 이야기 하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었습니다. 이 마음씨 착한 남편은 처음에는 같이 웃으며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남편의 단점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을 웃기자, 그 다음부터 이 남편은 점점 말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이 외출할 때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망신당할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직장에 독신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의 바르고 존경해주고 얼마나 잘 해주는지 아내하고는 멀어지기 시작했고, 이 독신 여성과는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이 본 패티 여사는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편의 허물을 들추어 사람을 웃기는 자신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는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을 칭찬하면서 부부간의 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지간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워싱턴 주립대학의 존 카터 박사는 부부상담 치료의 권위자입니다. 그는 30년 동안에 3,000쌍의 부부를 연구하면서 이혼할 수밖에 없는 4가지 이유를 찾아내었습니다. 이혼하게 하는 첫째는 부부가 서로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변명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서로 경멸하는 것이며, 네 번째는 서로가 담을 쌓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은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논문 결과처럼 특별히 서로 격려해주고 인정해 주어야 할 부부가 서로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고 하면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서로 인정해 주고 축복해주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성공할거예요!', '당신은 훌륭해요!', '당신은 복스럽게 생겼어요.' 언제나 이런 좋은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부부는 항상 쓰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크게 쓰실 거예요.'라고 칭찬의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제 아내는 '당신은 목사님 중의 목사님이에요.', '당신의 설교는 참으로 은혜가 넘쳐요.' 라고 말합니다. 부부가 서로 인정하고 존경하고 칭찬할 때, 얼마나 많은 힘을 얻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가운데 엘리자베드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로버트 브라우닝이라고 하는 유명한 시인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대단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부잣집에서 태어났는데, 11남매의 맏딸이었습니다. 열두 살 때, '마라톤 전투'라는 4부로 된 서사시를 쓸 정도로 문학적 재질이 뛰어났습니다. 부자 아버지는 딸의 시를 가지고 책을 만들어 시인이 되려고 하는 딸의 꿈을 한껏 부풀게 했습니다. 그러나 15살 때, 낙마하여 모든 행복은 사라졌습니다. 척추를 다쳐 평생 병상에 보낼 처지에 있었던 그녀는 시를 씀으로 고뇌를 잊으려고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사랑했던 남동생이 뱃놀이를 하다가 익사했습니다. 그렇게 불행이 겹쳐지면서 그녀는 외출도 안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여, 시를 쓰면서 외톨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암울한 시절을 보내온 그녀에게 뜻밖의 희망의 빛이 들어 왔습니다. 두 번째 시집을 발간했을 때, 브라우닝의 편지를 받은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시를 진실로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이 쓴 시들을 한 없이 사랑하고, 그리고 당신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고백이 담긴 편지였습니다. 엘리자베드가 답장을 써 보내자 또 편지가 왔습니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우닝은 엘리자베드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녀는 브라우닝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척추 부상으로 병상에 누워서 지내는 그녀였습니다. 이 결혼이 불행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아버지는 결혼을 만류했지만, 이 둘은 너무 사랑한 나머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반신불수로 있던 이 엘리자베드의 건강이 회복되어 걸어다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브라우닝은 엘리자베드가 결혼을 안 하려고 할 때 "당신의 병은 환상적인 것입니다. 상상에 불과해요. 마음만 굳게 먹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습니다. 용기를 갖고 나와 결혼합시다."라고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결혼했는데, 그 의 말대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 창작활동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오로라 리이'라는 엘리자베드의 소설은 보름만에 재판을 찍을 정도였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격려하면서 사세요. 기적이 일어납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행복하게 해주는 말을 하십시오. 언제나 긍정적인 말만 하십시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서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십시오. '지금까지 나와 함께 살아주어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하십시오. 사랑의 말을 하면 반드시 행복해 집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


 본문 / 마태복음 19:4~6



 구약 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서'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라기 1:6을 보면 그 당시의 성직자들이었던 제사장들의 타락상이 엿보입니다. 제사장들은 가장 거룩하게 살아야 되고, 가장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제사장들이 오히려 가장 타락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말라기 1:7을 보면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떡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제사장이었던 것입니다. 8절에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을 정성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눈먼 것, 다리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렸습니다. '이런 것을 총독에게 드려봐라 총독이 기뻐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헛된 제사를 드리지 않도록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3절에는 제사장들의 방자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을 쳤던 것입니다. '훔친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2:2절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고 저주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3절에는 『보 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성직자들이 이렇게 타락했는데, 백성들은 오죽 했겠습니까? 말라기 2:10 이하의 말씀을 보면 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정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1절에 보면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라고 했고, 16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혼하는 자가 얼마나 많고, 아내를 학대하는 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하나님께서 이런 자를 미워한다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살아계셨던 그 당시의 삶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아내와 살기 싫으면 어떠한 트집이라도 잡아서 이혼증서를 써주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또 이혼한 ! 여자가 이혼증서를 가지고 있으면 다른 남자와 떳떳하게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혼자 살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유부녀가 아니기에 유죄 판결을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깨어지는 가정이 더 많아지고 남녀관계가 복잡해졌습니다. 점점 더 음란해지고 사회가 성적으로 문란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9:6을 보면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찌하여 이혼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본문 7절)라고 반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너희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본문 8절)고 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만일 사람들이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의 남자들이 이같이 비뚤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주시면서 하셨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셨기에 결코 사람이 나눌 수 없습니다. 젊은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한 몸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 생활에 성공하려면, 이 말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음 없이 결혼을 하고, 믿음 없이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불행해지고 실패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3:7을 보면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말합니다.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임을 알고 귀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아내는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남편과 두 손을 잡고 함께 갈 동반자이며,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 동반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남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남자에게 한 여자를 붙여 주셔서, 세상에서 살다가 천국에 가면 천국에도 함께 가서 살 사람이니, 하나님이 주신 아내는 얼마나 귀한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변함없이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가운데 만나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가장 좋은 짝을 주셨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서로 맞지 않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신뢰! 하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신실하 신 분이기에 가장 좋은 짝을 주셨는데, 그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는 나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둘째, 결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셋째, 인격(성품)이 아주 미숙합니다.

 넷째,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결혼할 때에도, 내 마음대로 배우자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조건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면서 응답하실 날만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의 결혼을 위해서 기도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중매를 하시는 분에게 저는 기도 응답을 받고 나서 "좋습니다."하고 말했더니 그날로 바로 답변이 왔는데, "돌아오는 월요일에 약혼식을 합시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사자와는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약혼날짜가 잡힌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 10시에 전화를 하고 아내가 될 사람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장차 장모님이 되실 집사님이 저에게 3층에 있으니 올라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3층으로 올라갔더니, 방바닥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삼십분이 지나도록 기도를 하며 기다렸지만 그 자리에 꿈적도 안하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 뒤 월요일에? 약혼식을 했습니다. 약혼식이 끝나자 장인 되실 장로님이 "한 달 안에 결혼식을 하겠네."하셨습니다. 당사자들끼리는 얘기도 못해보고 결혼식을 한 것입니다.

 결혼식을 하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하고 나서 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실수를 해도 크게 한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제 아내는 사모가 될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버님 같은 훌륭한 장로님을 남편으로 만나 평생 교회에 충성하면서 살려고 했지, 교역자의 아내가 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결혼할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혼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지난 금요일에 갑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월요일에 약혼식을 한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밤을 지새우면서 밤새도록 울다가 저를! 만났으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제는 아내는 사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목사 사모가 되었으니 어떡하면 좋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백지에다가 그림을 그리듯이 아내에게 사모에 대해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모는 두 종류의 사모가 있는데, 하나는 '똑똑 사모'이고 하나는 '바보사모'가 있다고 했습니다. '똑똑사모'는 말도 잘하고 기도도 잘해서 교인들에게 허물을 잡히지 않는 아주 훌륭한 사모이고, '바보사모'란 누구를 만나든지 반갑게 인사만 하고 '난 몰라요. 목사님께 여쭈어 볼게요.' 이렇게 핑계를 대고 대답을 하지 않는 사모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둘 중에 어떤 사모가 될 거예요?"하고 물었더니 제 아내는 '바보사모'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결혼 한지 몇 달이 지나자,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백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하는 사모가 났다고 소문이 자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반갑게 인사한 뒤 말을 걸면 "난 몰라요."하는 아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시집을 와서 음식을 차렸는데, 제 입맛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수 ! 믿지 않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술을 많이 마시는 어른들 밑에서 얼큰한 찌개를 먹고 자라, 매운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차려온 음식을 보니, 고춧가루는 하나도 넣지 않고 음식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과 영 딴판이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자는 남자 앞에서 수줍음을 잘 타는 얌전하면서 애교가 있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정반대였습니다. 더군다나 금방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입덧이 심한데다 저혈압이어서 아침에 잘 일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목사 사모가 아침에 못 일어나니 새벽기도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부지런하고 기도 많이 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정반대의 여자를 아내로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 보다 더 큰 문제는 저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여자를 이해할만한 예비지식도 없고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그런 아내와 함께 살아갈만한 남편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날마다 잔소리하면 부부싸움만 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뼈 안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오직 기도만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새벽에 교회에 가서 얼마나 울부짖으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언제나 기도하고 난 뒤 눈을 떠보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 쓸쓸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아내 역시 기도만 했습니다. 잔소리도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더 많이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3일, 5일은 물론 14일, 17일 이상을 금식 한 적도 많았습니다. 아내는 하나님 앞에 목숨 걸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도저히 사모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 있으면 오히려 남편의 목회만 가로막을 뿐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이 빨리 죽어 다른 여자와 결혼 시켜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네 남편은 주의 종이니 순종하고 살아라."고 하셨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은 뒤 아내는 오직 순종만 하는 사모로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가끔씩 아내는 저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다른 여자와 결혼했으면 목회를 더 잘 했을 텐데… 저와 결혼해서 손해를 많! 이 보았죠?" 제게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 말의 의미가 '제가 빨리 죽으면 다른 여자와 결혼하세요.'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20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한 번은 아내가 맹장염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아내의 맹장이 뒤에 있어서 병명을 알 수 가 없었습니다.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고 해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도 몰랐습니다. 저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내 아내보다 좋은 여자는 없어.'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제 아내보다 좋은 여자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발 아내를 살려주세요."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수술을 해 보니 다행히도 죽을병이 아니라 맹장염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내가 달리 보였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아내의 성품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아내가 요리한 음식을 보아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매운 것을 좋아하고 아내는 맵지 않은 것을 좋아하니, 음식의 간?! ? 적당하게 맞추어졌습니다. 얼굴도 예뻐 보였습니다. 아내가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는지 모릅니다.

 결혼 후 임신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지만, 언제나 제가 설교준비를 할 때면 옆방에 가서 두 시간, 세 시간 이상을 저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저의 설교준비가 다 끝나면 깨끗한 글씨로 공책에 다시 정리해서 가져다주었습니다. 20여년을 한결같이 그렇게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일등 사모노릇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40년 정도 함께 살아보니, 아내는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특별히 보낸 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만큼 목회를 하게 된 것도 좋은 아내를 주셔서, 내조 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 부부가 문제가 너무 많았지만, 이렇게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이 주시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부가 싸우지 않고 기도로 해결하려고 했고, 기도하다보니 둘 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랑과 지혜로 말미암아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려고 하면 성령이 주시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성령이 부어 주시는 사랑이 넘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얼마든지 행복한 부부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말미암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둘이 한 몸이 될지니fk



 본문 / 마태복음 19:4~6



 서양 격언에 보면 '항해하러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러나 결혼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결혼하는 것은 항해하러 나가는 것보다 위험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보다 더 위험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서양 격언에 보면 '왕국을 다스리는 것보다 가정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렵다.(몽테뉴)', '가정은 땅 위에 세워지지 않고 인내위에 세워 진다.(알바니아 속담)', '가정은 행복을 저축하는 곳이요 그것을 채굴하는 것이 아니다. 얻기 위해서 이루어진 가정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요 주기 위해 이루어진 가정만이 행복한 가정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격언들을 살펴보면 우리들이 좋은 짝을 만나서 일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가정의 문제나 부부의 문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그 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아내를 버리는 남자들이 많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창세기 2:24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본문 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1.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부부의 연합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신체적인 구조만 보아도 다르지만 신체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바라는 것이 다릅니다. 그 밖에도 다른 점이 많습니다. 더군다나 이 삼십 년을 서로 다른 가정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한 집에서 한방을 쓰면서 함께 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이 연합을 해서 한 몸을 이루려고 하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자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이 삼십 년이나 먹으면서 살아왔습니다. 남자의 그 미각은 어머니의 음식맛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며 그 맛에 길들여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이 삼십 년 이상을 해 오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경험을 통해서 모든 일에 익숙하십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유치원생과 같습니다. 어머니를 살림박사라고 하면 아내는 유치원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남편은 자신의 아내를 자꾸만 어머니와 비교합니다. ! '어머니는 이것도 잘해. 어머니는 저것도 잘해. 그런데 당신은 잘 하는 게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잖아.' 하면서 아내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비록 아내가 지금은 못하지만 십년만 지나면 어머니보다 더 일을 잘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지혜롭기 때문에 일을 배우는 속도도 빠릅니다. 그런데 이 삼십 년이나 차이나는 어머니와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탓하면 어떻게 부부가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부부가 연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부족한 점만 보고 탓하지 말고 서로 인내하면서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2. 부부의 연합을 위해서는 먼저 그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결혼을 했으면 독립을 하라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도 독립을 하고 경제적으로도 독립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가 되었으니, 결혼 전의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살지마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살다가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부모님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가정을 이루었으면 경제적으로도 독립을 하여야 합니다.! 부모님에게 물질을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을 했으면 독립하여 오히려 부모를 도와야 하고, 부모를 잘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라'고 한 이 말씀은 우리가 순종해야 할 명령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이 말씀은 부모를 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먼저 부부가 연합하여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부부가 되려면, 부부가 연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부모들도 자식이 결혼했으면 부부의 연합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가 연합되기 위해서는 애정 표현과 부부관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혼한 신혼부부는 날마다 애정표현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빨리 연합할 수 있습니다. 부부관계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나 다른 식구들이 함께 있으면 부부관계도 애정표현도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부가 의견을 하나로 맞추는 것도 굉장히 힘이 듭니다. 그런데 옆에서 부모가 간섭하고 형제가 끼어들면 의견일치를 보기가 더더욱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행복을 위해서는 먼저 그 부모를 떠! 나라고 하나님은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을 순종해야 하듯이 '그 부모를 떠나라'고 하신 말씀도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간섭하지 말고 자식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결혼을 했으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신혼부부는 이제 가정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입니다. 남편은 '남편학과'에 입학을 했고, 여자는 '아내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에는 공부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 나가고 여자는 아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10년, 20년, 30년 살다가 보면 서서히 성숙한 부부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부부로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1.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벧전 3:7)

 지식이 없으면 모르기 때문에 실수를 참 많이 합니다. 저 역시 서른 살에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어떻게 이루어 가야 하는지 지식?! ? 없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3.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가정을 이상적인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정이 은혜로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며, 기도하며 은혜 가운데 사는 이상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이 가정을 세상의 빛이 되는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가정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3. 부부는 분방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입니다. 그래서 나누어지면 안 됩니다. 부부는 함께 있어야 되고, 함께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는 혼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함께 있어! 서로를 보호해 주고 서로를 지켜 주며 살아야 경건한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한 몸이 되어 잘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지만 교회에 있을 때나 집에 있을 때는 너무 편안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부흥회를 하기 위해 다른 도시나 외국으로 나가면 그 때부터는 영적 전쟁이 시작됩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기도를 더욱 더 많이 합니다. 관광지에 가도 관광을 하지 않습니다. 호텔에 있어도 TV를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말씀 준비하며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1~5에 보면,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 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 다. 이 말씀처럼 부부는 분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가 분방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1?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입니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음행을 저지르기가 쉽습니다. 사람의 근본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되어 음행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서로가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절제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시험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은 남녀의 구별이 없습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실수하게 됩니다. 남자에게만 정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정욕이 있습니다. 사탄이 시험하면 어떤 실수를 할 지 모르기에 분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3? 분방하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 할 수 없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아내의 몸은 남편이 주장해야 되고 남편 의 몸은 아내가 주장해야 하는데, 분방하면 이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서 7장을 보면 아내의 몸은 아내가 주장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직 남편만이 주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편의 몸 역시 남편의 것이 아니기에 남편이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 서약은 '남편의 의무를 다 하겠습니다. 아내의 의무를 다 하겠습니다.'하는 약속입니다. 또 '내 몸은 이제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내 몸을 주장하십시오!'하는 약속이 결혼 서약입니다. 이것은 성경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방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을 만드실 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얼마든지 여자를 많이 만들어 주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한 남자에게 한 여자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경건한 자손을 얻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 부부 사이에서 난 자식도 문제가 많은데, 많은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가 그 많은 자식을 낳았을 때는 어떠할 까요?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얼마나 문제가 많겠습니까?

 다섯 ?! 틂뺐? 있는 남편이 있다고 하면, 밤에 한 여자만 데리고 잠을 잘 수밖에 없 습니다. 그러면 네 여자가 분방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천명의 여자를 데리고 살았으니, 한 여자를 데리고 자면 999명의 여자는 분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여자들도 욕망이 있기에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니 그 집안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왜 하나님이 분방하지 말고, 한 남자와 한 여자와 함께 살라고 했을까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수영로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의 마음에 잘 새기고,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적용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남편들아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


 본문 / 엡 5 : 25 - 30



 한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룬 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먼저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므! 로 우리가 행복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남편이 자기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 가정에 행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30세에 중매를 통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문제를 놓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도 중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분임을 알기에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결혼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얼마나 좋은지, '12살에 결혼할 걸!'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장가를 늦게 간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장가가면 수지맞습니다. 살림살이는 신부가 다 가져옵니다. 거기다가 밥과 빨래까지 해 줍니다. 장가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들은 결혼을 한 뒤 오히려 고달파지고 고생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결혼 전에는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스러운 몸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며 살았는데, 결혼 후에는 한 남편의 아내로서 설거지, 빨래, 집안 청소 등 많은 집안일을 도맡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결혼을 하면 임신을 하게 되고, 임신을 ?! 玖? 입덧이 생깁니다. 남자들은 입덧을 하지 않기에 여자의 입덧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도 못합니다. 또 해산의 고통도 따릅니다. 이 해산의 고통을 남자와 여자가 번갈아 가면서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여자들만 이런 고통을 겪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왜 결혼을 할까요,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그 어려운 고통을 인내하며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남편들아,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가정의 행복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성경은 남자들에게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남편이 사랑만 해주면 여자의 얼굴은 금방 환하게 빛이 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는 여자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얼굴에 기쁨이 넘칩니다. 그런 가정은 언제나 천국입니다. 그런 아내는 남편의 얼굴만 봐도 좋은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망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생이 와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생이 와도 남편과 함께라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직 남편의 사랑만 보고 시집을 왔는데 남편이 사랑을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런 여자는 얼마나 불행할까요, 결혼이 그 여자에게서 지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런 즐거움도 없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오직 죽고만 싶습니다. 남편을 떠나고 싶습니다. 여자에게서 희망이란 없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남편이 사랑해주고, 보호해주고, 품어줄 때, 온유해지고 양같이 순하고 착해집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 주지 않으면 아내들은 거칠고 사나워집니다. 아내들이 험해지고 사나워지는 것은 전적으로 남편의 책임입니다.

J. 헤이우드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내는 암사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암사자는 무섭고 사납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가정에 파탄이 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남자들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행복한 가정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야하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편들이 아내를 사! 랑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베드로 전서 3:7을 보면 『남편들아 ? 結?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지식을 따라'라고 합니다.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는지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가 결혼을 했는데 부부 싸움을 한 뒤 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화가 난 남편은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 놓겠다고 단단히 별렀습니다. 친정에 온 딸을 보는 부모 마음도 편치는 않았습니다. 며칠 쉬게 한 다음 딸을 돌려보내며 친정아버지가 편지 한 장을 건넸습니다. "얘야, 두말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는 즉시 네 남편에게 이 편지를 전해 주렴." 집에 돌아온 아내는 편지부터 불쑥 내밀었습니다. 신랑은 편지를 받아 들자마자 기겁을 했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취급주의! 깨지기 쉬움'

 성경에는 아내를 '연약한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깨지기 쉬운 그릇이지만, 이 그릇 안에는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는 보배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그 그릇이 깨어지지 않도?! ? 보호해주고 귀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남편은 그 그릇에 담긴 보배로 하여금 평생토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귀히 여기고, 아내는 남편을 귀히 여길 때만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부부의 행복이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부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만 있었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돌아가셨기에, 제게 사랑의 지식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아내는 이렇게 다루어야 한다'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제 마음 속에 '여자란 일주일 안에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여자를 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잡히지 않는 것이 여자입니다. 전 어리석게도 여자를 잡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말을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와 말싸움을 했다가는 질게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말로! 싸워 이기는 남자는 별로 없습니다. 저는 3년 동안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때, 제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전 20년 뒤에야 알았습니다. 제 아내는 그 당시에 죽고 싶은 생각, 도망가고 싶은 생각 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그 때 제 아내가 도망갔더라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3년 동안 저 역시도 고생도 많이 하고 손해도 많이 보았습니다. 살고 싶지도 않고 도망가고 싶은 여자가 살림이나 제대로 했을까요? 그저 식사 때가 되면 밥 한그릇을 올려놓고 마른 멸치와 고추장으로 밥을 먹으라는 것이었어요. 아내에게 잘 대해 주어야 맛있는 식사를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아내를 잡으려고 하다가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지 모릅니다. 아내에게 잘못해 주면 자신에게 손해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28을 보면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사랑의 방법을 몰라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도망가지 않고 참고 살아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 니다. 아내가 도망갔더라면 전 목회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3년쯤 지난 어느 날,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정반대로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혼 3년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둘째 딸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퉁퉁 부어있는 아내에게? "여보, 힘들지! 오늘도 아이들 돌보느라 고생 많이 했지!" 전 부드럽게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아내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말을 지혜롭게 하십시오. 여자들은 남편 말 한마디에 그 마음이 천국이 되었다가 지옥이 되었다가 합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가 중요한 것입니다. 남편들은 될 수 있는 한 아내를 칭찬해주고 위로해주는 좋은 말만 골라서 해야 합니다. 이때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반찬도 좋아지고 집도 예쁘게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장점도 보이지만 단점도 보입니다. '이 사람에게 이런 좋은 점이 있구나.', '이 사람이 이런 고약한 점이 있구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다 드러납니다. 부부사이에는 서로가 단점과 장점을 다 압니다. 그러나 부부사이?! ?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의 허물이 드러나도 그 단점만 ? 梶?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점만 얘기 하십시오. 좋은 점만 얘기하다보면 나쁜 점은 서서히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좋은 점을 말하지 않고 허물만 지적하면 부부관계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 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 셰익스피어가 인생은 연극이라고 말했어. 당신은 연극무대의 여자주인공이고 나는 남자주인공이야. 그러니 우리는 항상 희극만 연기합시다. 그러면 나도 재미있고 당신도 재미있고 구경꾼들도 즐거워 할거야. 그러나 우리가 비극을 연기하게 되면 우리도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고 구경꾼들도 비극적이지 않겠어? 그러니 당신과 나는 언제나 희극만 연기하고 삽시다." 아내와 전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그런 뒤부터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희극만 하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놀고 있는 두 딸이 있었지만 아내를 번쩍 들어서 안고는 말합니다. "여보, 이 세상에서 당신처럼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어. 당신은 볼수록 예뻐." 그러자 제 아내는 "전 당신 뒷모습만 보아도 행복해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말 한마디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전도서 9:9을 보면 『네 !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얼마나 허무하고, 얼마나 환란이 많습니까!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아내와 즐겁게 살라고 하십니다. 즐겁게 살려면 상대방을 사랑해 주어야 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 때,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받아주려고 해야지 절대 고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은 무조건 받아주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받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받아주는 것만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이었던 카터 대통령의 아내 로자린은 남편하고 시간관리 문제로 종종 싸웠습니다. 남편 카터는 어느 모임이나 늦을까 봐 조바심을 내는 편인데, 아내 로자린은 여유있게 준비를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출하는 날은 늘 두 사람?! ? 다툼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아내 로자린의 생일 카드에 카터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안 되니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합니다. 여보, 오늘까지 당신을 많이 괴롭혔는데 지금부터 당신은 시간 지키는 일에서 자유롭게 사십시오." 이 카드를 받고 로자린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당신이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에요." 하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부부는 싸움을 안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혼한 지 십 년 된 부부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불만은 커져갔습니다. 가정의 화평이 깨지자 부부는 고민 끝에 각자 종이 상자를 하나씩 준비하여 서로에게 불만이 생길 때마다 불만 내용을 글로 써서 그 곳에 집어넣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상자를 서로 바꾸어 보기로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자, 한 달 동안 당신이 얼마나 나를 실망시켰는지 보세요."하고 아내는 종이상자를 내밀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종이상자를 하나하나 펴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쓴 쪽지에는 하나같이 "그래도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5:25에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 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 주었던 것처럼, 남편들은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위하여 목숨까지 줄 수 있는 남편이라면, 아내에게 양보하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요?

 서로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하게 된 한 쌍의 연인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아파트 한 채를 미리 사 두었고, 여자는 아파트 규모에 맞을 만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점찍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여자의 아버지가 갑자기 사업에 실패해 하루 아침에 형편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여자의 아버지는 쓰러져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 달 앞둔 날,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여자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혜원씨, 사실 아파트는 내 것이 아니에요." 그러자 여자의 눈에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괜찮아요. 전 이제 그 집에 가득 채울 살림살이를 하나도 장만하지 못 하는 걸요." 그리하여 두 사람은 전세방에서 살림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남자의 월급은 보통사람보다 적었지만 여자는 마냥 행복했습니다. 일 년 뒤 여자의 아버지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사업?! ? 다시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조금씩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 윱求?. 이제 크고 좋은 가구를 얼마든지 살 수 있었는데 남자에게는 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결혼 전에 남편이 자기를 속였던 사실이 떠올랐고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여자는 친정어머니에게 자신의 불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사실은 김서방이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털어 놓아야 겠구나." 남편은 아무것도 해 올 형편이 못되는 신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차라리 아파트를 파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아파트를 팔아 장인의 빚을 갚았고, 매달 월급의 일부를 병원비로 썼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여자는 남편의 깊은 사랑에 행복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져 옴을 느꼈습니다. 얼마나 멋진 남자입니까! 이런 가정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이 아닐까요?

 나이가 60이 넘은 한 노인이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서 누워있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서 시장을 가고, 쇼핑도 가고 산책도 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어느 한 분이 그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부인을 24시간 옆에 두고 보살펴야 하니, 얼마나 힘드세요! ?" 그러자 이 남편은 "아니에요. 내 평생에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라는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직장생활하느라, 사업하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하고 아내와 얘기할 시간도 없었는데, 이젠 제가 은퇴해서 내 사랑하는 아내와 항상 함께 다니며 늘 이야기 하면서 지내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하고 말했습니다. 겨우 말만 할 수 있었지, 밥숟가락 하나 제 손으로 쥘 수 없는 아내를 바라보며, 아내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대한 사랑이 위대한 행복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위대한 사랑으로 위대한 행복을 창조해 나가시길 축원합니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



 본문 / 잠언 12:4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갖길 원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고 하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데 실패한 사람들의 가장 큰 원인은, 마음은 있는데 지식이 부족한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방법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이렇게 불행하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지 몰라서 허송세월을 살아온 60! 대 부부가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나이를 막론하고 교육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1. 남자들은 아내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남자들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내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아내 없이 혼자 산다면 결단코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합니다.

 잠언 18:22에는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맨 마지막으로 아담이라는 한 남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하여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곳은 낙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혼자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외롭게 혼자 사는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가정입니다.?



2. 하나님께서 가정을 이! 루신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들어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2)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이 두 가지 사명을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잘 경외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혼이 잘 되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 가정이 경건한 믿음의 가정으로 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또한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5:15~17을 보면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가난하게 살아도 부부가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산다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을 얻습니다. 돈 많은 부자여서 대궐 같은 집에 살아도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믿음 생활도 하지 않고, 밤낮으로 마귀의 종노릇! 이나 하며 악한 세상에 속해서 산다면 그런 가정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습니다. 그 가정에 재산과 물질이 많을 지라도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그 가정에 행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정,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3. 남편이 가정의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22~24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말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아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에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머리는 리더십을 말합니다. 어떤 공동체나 리더가 있어야 하고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리더가 없는 공동체는 망하고 맙니다. 온전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남편을 머리로 세워 주셨습니다.

2) 남편이 먼저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 선악과를 먼저 따먹은 것은 남자가 아니고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로 인해 이 땅에 죄가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남자를 가정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4.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22에 보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남편 섬기기를 예수님을 섬기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아내가 남편을 왕처럼 대하면, 남편은 왕이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머슴 대하듯 하면 남편은 머슴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3:6에 보면,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고 칭했습니다. 하나님 대하듯이 아브라함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여자는 남자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하면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자녀를 낳아! 기릅니다. 여자에 의해서 가정이 형성됩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와 사느냐에 따라서 궁전 같은 곳에서 살 수도 있고, 쓰레기통 같은 집에서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19:14을 보면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재산을 상속받아도 아내를 잘 얻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집과 재물을 물려받는 것보다 슬기로운 아내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아내를 얻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인 것입니다.

 탈무드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좋은 아내를 얻는 남자'라고 했습니다.

J. 에이우드는 '남자의 일생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좋은 아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착한 아내와 건강은 남자에게 가장 좋은 재산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좋은 아내를 얻으면 사람들로부터 효자라는 말을 듣고, 자식을 잘 길렀다는 말을 듣고, 성공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5. 성경에서 말하는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1? 현숙한 여인이 되어야 합니다.

 잠언 31:10절부터 현숙한 여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읽을 때마다 현숙한 여인이 얼마나 훌륭한 여인인지 감동을 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지혜롭고, 부지런하고, 자녀들도 믿음 안에서 잘 양육하고, 남편을 잘 섬기는 자입니다.

 잠언 26장을 보면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라고 했습니다. 지혜 있는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잠언 14:1을 보면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24:3~4을 보면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상 25:2~3을 보면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도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인 나발은 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얼마나 부자였는지 모릅니다.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나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나발은 형편없는 남편이었지만 아내 덕분에 복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상 25:32~38을 보면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 두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 다윗이 그가 가져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고 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내가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허락하노라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 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 틜?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에서 깬 후에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말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악한 나발이 다윗의 은혜를 저버렸다가 죽을 뻔한 일이 있었지만, 아비가일의 지혜로 말미암아 죽음을 면하게 된 일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참으로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잠언 31:30을 보면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지혜가 나와서 집안을 일으키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들이 집을 이렇게 세운다다는 것입니다.

 는 어진 여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좋은 아내를 어진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잠언 12:4을 보면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어진 여인은 남편의 면류관입니다. 명심보감에서도 '어진 아내는 남편을 귀하게 만들고, 악한 아내는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남자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좋은 옷을 입는 것이고,

 둘째는 좋은 가정을 가지는 것이고,

 셋째는 좋은 아내를 갖는 것입니다.

 어진 아내는 남편의 잘못을 용서하고 남편의 부끄러운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어진 여인은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 줍니다. 사랑은 조건 없는 자기 용납이요 자기희생입니다. 어진 여인은 남편을 칭찬하는 말을 잘 합니다. 남편이 부족해도 칭찬합니다. 칭찬은 보약과 같습니다. 믿음의 말, 축복의 말, 용기를 주는 말을 하여 남편을 귀하게 세워 주는 것입니다.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아내는 거센 아내, 남편에게 대드는 아내입니다. 특히 말이 많은 아내를 싫어한다고 합니다.

 어느 기독교 기관에서 1,500쌍 부부를 설문조사 했는데, 그 질문 내용이 '아내에 대한 남편의 가장 큰 불만이 무엇인가요?' 이었습니다. 가장 많은 답이 자기말만 하고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아내가 가장 싫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잠언 9:13을 보면 『! 미련한 여인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여자가 떠들기를 잘하고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잠 25:24)』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1:19)』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 15:1)』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 15:4)』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 18:21)』

 어진 여인은 말이 유순하고 행복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어진 여인은 남편에게 겸손하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남편보다도 지식이 더 많고, 더 능력이 있고, 더 잘났어도 남편이 자기의 머리인 줄 알고 남편 앞에서는 겸손한 것입니다. 남편보다 더 많이 알아도 '전 잘 몰라요'라고 말합니다. 남편보다 더 잘 해도 '난 잘 못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난 당신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어요.'이런 말을 합니다. 이런 여인이 지혜로운 여인인 것입니다. 이런 여인은 남편으로 하여금 즐겁게 아내를 돕게 만듭니다. 이런 여인이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여인들이 남편 앞에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교만한 여인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학자인 양자는 여행을 하다가 여관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관 주인은 두 여인을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은 아주 미인이고, 한 여인은 아주 못생긴 추녀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관 주인은 미인인 아내보다는 못생긴 아내를 더 사랑했습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양자가 여관 하인을 불러 물어 보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 여관 주인은 미인인 아내보다 추녀인 아내를 더 사랑하는가?"

 그 하인이 대답했습니다.

"그 미인은 자기가 미인인줄 알고 늘 교만하여 도리어 주인의 미움을 사고, 추녀는 겸손함으로 자신의 얼굴 못생긴 것을 겸손히 감추기 때문에 주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지요."

 깊은 깨달음을 얻은 양자는 제자들에게 '어진 일을 행하면서도 겸손한 사람은 어디를 가도 사랑을 받는다.'라고 교훈을 했습니다.

 통계 의하면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는 어떤 아내일까?'라는 질문에 가장 답을 많이 한 것이 '남편을 믿어주고 순종하는 아내' '남편을 인정하고 높이는 아내' '남편의 감정을 이해하는 아내'라고 했습니다.

 어진 여인은 남편을 존중하고 남편에게 예를 지킵니다. 사라처럼 아브라함을 '주'라 높이고 존경합니다. 아브라함이 남편인데도 마치 딸이 아버지를 대하듯이 겸손하게 대했습니다.

 여성도 여러분도 남편을 머리로 알고,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의 말에 순종하여 남편의 면류관인 어진 여인이 되길 축원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 에베소서 6:1~3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 말씀 속에서 무엇을 발견합니까? 성경을 가장 바르게 읽어서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고,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우리가 잘되기를 얼마나 원하시는 하나님인지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깨달음을 얻으신 분은 은혜를 받은 자요, 성경을 바르게 보는 자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율법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참 잔소리가 많으신 분이야. 이런 말까지 하시다니!"라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율법 속에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신명기 10:12~13에 보면,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 모두가 행복하게 살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인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한마디로 말해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3:8~10을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계명 하나 하나! 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 말씀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 받는 복은?

1.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받는 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사람이 사랑한다고 하면 하나님께 속한 자이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요한일서 4:7~8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요한일서 4:12)』 이와 같이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 4:12)』 하나님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받으려고 하면, 우리가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살면 됩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랑은 선택이 아닙니다. 사랑은 필수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을 빼면 죽은 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출 21: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 ?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출 21:15)',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출21:16)',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출 21:17)'라고 했습니다.

 또 신명기 21:18~21에 보면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이렇게 불효하는 자식은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죽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죽이신다고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패역한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나쁜 소문이 났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홉니와 비느하스를 불러 책망?! 玖?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순종했습니다. 결국 블레셋과 전쟁이 났을 때, 이 두 아들이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며느리도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엘리는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네 사람이 같은 날에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한 집안이 처참하게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합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께 바치는 것, 즉 성전 건축이 더 소중하고, 선교가 더 소중하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나님께만 물질을 바친다면 부모님의 생활비, 용돈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로 그런 짓을 했습니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려야 하는데 '고르반(막 7:11)'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드렸으니 부모님께는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잘못 세운 전통일 뿐입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의 이런 행위를 보고 "너희는 전통을 앞세워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려고 하느냐?"고 하시며 책망을 하셨습니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 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효도란 무엇일까?

1. 주 안에서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을 보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님께 순종을 하되 '주 안에서'만 순종해야 합니다. 혹시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부모에게서 우상 숭배를 강요받았다면, 어떤 핍박이 와도 순종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님께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효도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20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2.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2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고 합니다.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돌판에는 1~4계명이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 돌판에는 5~10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돌판의 첫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해서 부모를 공경하면, 두 가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네가 잘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땅에서 장수하는 것'입니다. 윗사람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고,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은 세상에서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합니다. 윗사람을 공경하는 사람은 자연히 윗사람을 기쁘시게 하여 윗사람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평강을 얻어서 장수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하셨지만, 이렇게 윗사람을 잘 섬기는 사람은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5:16을 보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메리 파이! 퍼는 '노인에 대한 사랑은 곧 자기 미래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 類罐霽? 잘 부양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년에 섬김을 받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이런 노인에 대한 사랑을 미래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안 보는 것 같지만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습니다. '저렇게 어른을 모시는 것이구나.', '저렇게 어른을 섬기는 것이구나.' 우리의 자녀들은 부모들이 하는 행동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손들에게 효도를 받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불효를 심으면 늙어서 불효를 거두고 효를 심으면 늙어서 효를 거둡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어떤 부모에게든지 해야 합니다.

 텍사스의 한 사내는 아내와 네 자녀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0년 동안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는 돈 한 푼 없이 죽었는데, 자기의 시체를 고향인 텍사스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던 자식들은 그 소식을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 사람과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어? 그 사람이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뭔데? 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 왜 우리가 그 시체에 수고와 돈을 들여야 하지?"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큰아들은 조용히 동생들의 불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체를 캘리포니아에서 운구해 오기 위해 자기 트랙터와 농기계를 저당 잡혔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씌어 있을 뿐, '어떤 부모'라는 말은 없단다."

 얼마나 훌륭한 아들입니까! 하나님이 이 큰아들의 행동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여러분, 효도는 어떤 부모에게든 똑같이 해야 합니다. 훌륭한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훌륭하지 못한 부모에게는 효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충북 제천 출신으로 판사가 된 분이 있는데, 그는 허리가 굽은 장애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버지는 노름 밑천을 내놓으라고 어머니를 닦달하다가 홧김에 마루에 있던 어린 그를 마당으로 던졌습니다. 이 일로 그는 곱사등이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도 없는 그는 대신 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습니다. 판사가 된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이지만 지극한 효? 돋?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효도하는 모습이 남다른 이 판사를 존경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든 아버지에게 효도를 할까요? 그것은 성경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여러분의 부모는 어떤 부모입니까? 훌륭한 부모든 그렇지 못한 부모든 여러분을 낳아준 부모를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4.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해야 합니다.

 여러분, 효도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해야 합니다. 돌아가신 뒤에는 효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거나 제사를 정성껏 모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효도는 살아계실 때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를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비엔나에서는 죄수를 일정 기간 거리 청소부로 일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곳 수상이 창밖을 내려다보다가 기이!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한 젊은 학생이 눈을 쓸고 있는 한 죄수에게 다가가더니 그 청소부의 때묻은 손에 정성껏 입맞춤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이 헤어지자, 수상은 그 죄수가 아마도 위험한 정치적 지도자이며 그 청년은 그의 추종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그 젊은 학생을 잡아오게 했습니다. 수상은 굳은 표정으로 젊은 학생에게 조금 전에 만난 죄수와는 어떤 관계이며,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각하, 그 사람은 바로 저의 아버지입니다." 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라고?", "네. 날씨가 춥기에 잠시 제 입김으로 손등을 녹여 드렸을 뿐입니다." 이 뜻밖의 사실을 안 수상은 국왕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죄를 지었다고는 하나 자식을 저렇게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애정을 마음속에 심어 주었다면 그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얼마 후 국왕에게서 답장이 왔고 청년의 아버지는 즉시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5.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부! 모가 죄와 허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녀가 자랑스럽게 자란다고 하면 이것 이야말로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자녀가 바로 효자이고 효녀입니다.

 잠언 23:25을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효도는 마음만 먹어도 복을 받습니다. 어느 날, 신문에 이상한 광고가 났습니다. '나이든 어머니를 팝니다.' 세상에 이런 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나이든 어머니를 판다고 하니, 세상 사람들은 그런 광고를 낸 자식을 손가락질하고 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고아로 가난하게 지냈던 한 젊은 부부가 이 광고를 보았습니다. 이 부부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살았기에, 부모가 있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던 참에 '나이든 어머니'를 판다는 광고를 보자마자 그? 어머니를 지신들의 부모로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부부가 광고를 보고 찾아간 집은 대궐같은 부자집이었습니다. 벨을 누르자 노인 한 분이 나와서 어떻게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부부는 "우리는 고아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부모 없이 살다보니, 부모가 계신 분이 부러웠습니다. 마침 신문에 나이 드신 어머니를 판다고 하기에 그 어머니를 사려고 왔습니다."고 대?! 鄂颯윱求?. 그러자 이 노인은 너무 반가워하며 이 젊은 부부에게 "내 뜻에 맞는 사람이 왔구먼. 이제 자네들은 내 자식이오."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그 부부에게 "이 집은 당신들 것이니 이 집에 들어와서 함께 삽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보게, 내가 양자를 구한다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도 재산이 탐이 나서 몰려왔을 게야. 그러나 나이든 어머니를 판다고 하니, 자네들처럼 진심으로 효도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겠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효도할 마음만 가져도 그 마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복을 받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는 효도 실천 십계명'이 있습니다.?

1. 신앙을 갖도록 해라.

2.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 드려라.

3.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라.

4. 궁금증을 풀어 드려라.

5. 자유롭게 쓰실 수 있도록 정기적인 용돈을 드려라.

6. 향토적인 음식을 해 드려라.

7.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려라.

8. 일거리를 찾아 드려라.

9.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 드려라.

10. 등을 긁어 드리 고 손발톱을 자주 깎아 드려라.? ?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효도를 실천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즐겁고 기쁘시게 하여, 저절로 부모님의 입술에 축복의 말이 나오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네가 잘 되는 복'과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해야 합니다.

 진정한 효도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자녀양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 / 에베소서 6:4




 잠언 17:6을 보면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시편 128:1~6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고 했습니다. '네 자식의 자식을 보는' 복은 장수하는 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장수하지 않으면 '자식의 자식'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자손이 잘되는 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자손들이 멸망당하지 않고 번창함으로 이루어지는 복입니다. 참 귀한 복입니다. 그러므로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잘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손이 크게 번성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자손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자손이 되느냐 아니면 축복 받지 못할 자손이 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로보암 왕이나 아합 왕의 자손은 백 명이 넘습니다. 그렇게 많은 여인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지만 한순간에 멸망을 당해서 모두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들은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으로 번성해서 큰 나라를 이루었지만, 그들은 평생 나쁜 짓만 합니다. 다윗시대 그 족속들은 종살이 하다가 멸망당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손들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저와 여러분의 자손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처럼 잘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처럼 잘 되려면?

1. 믿음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여러분?! ? 자손들은 믿음으로 자라나서,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 ? 믿음으로 사는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믿음은 보배입니다. 다른 축복을 아무리 많이 받았어도 믿음이 없으면 저주 받은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작은 성도들은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주일에도 학원에 보냅니다. '교회는 대학 가서 다녀도 된다.', '대학가서 신앙생활해도 된다.', '공부나 열심히 해서 일류대학 가라.'고 하며 교회도 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녀들이 대학생이 되면 자기 주장이 강해져서 부모 말을 듣지 않습니다. 또 대학생활 자체가 사회생활과 같기 때문에 타락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대학 입학식이 끝나면 신입생 환영회를 합니다. 요즘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술 파티를 하는데, 믿음이 있는 학생들도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믿음이 없는 학생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믿음의 교육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뉴욕에서 한 유명 인사와 식사를 하는데, 그 분에게서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목사님, 어쩌면 좋습니까? 열두 살 난 제 조카가 권총으로 자살을 했어요. 잘 생긴 얼굴에 성적도 모든 과목을 A학점을 ! 받았죠. 그리고 스케이트 대회에서 여러 차례 일등을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왜 자살을 했느냐고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조카가 죽기 전에 시카고에서 열리는 스케이트 대회에 나간다고 하기에 제 엄마가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시카고까지 스케이트를 타러 가서야 되겠느냐"고 스케이트 대회에 못나가게 했답니다. 그랬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2층 아버지 방으로 가서 서랍에 있는 권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쐈다는 것입니다." 이 유명인사의 조카는 인물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지만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자살을 한 것입니다.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지 않으면 헛된 교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철저히 신앙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결국은 타락하는 것과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여호수아의 다음 세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 수재너는 같은 말을 스무 번 이상 하면서 자녀를 교육시켰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당신의 인내심은 정말 놀라워. 아니 똑같은 말을 어떻게 스무 번씩이나 하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지? 나 같으면 스스로 지겨워서 포기할 텐데 말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여보 만일에 내가 그것을 열아홉 번만 말하고 포기했다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을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수재너는 19명의 자녀를 키웠는데, 자녀교육에 관한 교훈적인 말을 많이 했습니다. "자녀들의 고집을 꺾어라. 이것은 빨리 꺾을수록 더욱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잔인한 사람이다. 이런 부모는 타파되어야 할 악습으로 자녀들을 기른다. 그리고 자녀들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다." 라는 교훈적인 말을 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이 직접 교사가 되어 엄격한 가정교육, 종교교육을 시켰습니다. 매일 가족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저녁 6시에서 9시까지 가졌습니다. 어린 자녀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의 손을 잡고 감옥과 병원, 양로원을 함께 심방하여 이웃 사랑의 정신을! 키워 주었으며, 한 주에 한 끼씩 금식하며 하루에 세 번 씩 소리내어 기도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밤 9시에 경건기도회가 끝나면 아이들을 세워놓고 물었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누구냐?" 아이들은 대답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어린이입니다." 어머니가 다시 묻습니다. "누가 너희를 위대하다 했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예, 우리는 지금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누가 하게 했느냐?", "우리를 위대하게 쓰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문답이 끝나면 모두 "아멘"하고서 잠자리에 들어갔습니다. 날마다 이 같은 말을 반복했기에 존 웨슬리 같은 인물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요!

 록펠러는 손자들에게 금전교육을 엄격히 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맨해튼 은행장이었던 데이비드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금전교육을 어떻게 시켰는지를 즐겨 말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용돈으로 주급 25센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그 돈을 어디에 썼냐고 물어 보았답니다. 그래서 바르게! 사용했으면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5센트를 더 주었고, 잘못 사용했으면 사정없이 5센트를 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용돈을 주면서 반드시 두 가지를 지킬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는 용돈 중에서 10%는 십일조를 하고 10%는 구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섬길 줄 알고, 이웃을 섬길 줄 아는 자녀로 키웠습니다. 그래서 자녀 가운데 맨해튼 은행장을 비롯한 유명한 자녀들이 많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2. 부모가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지도자가 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잘 되려면 가장이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비들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아비'에게 자녀양육의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미들아' 하지 않고 '아비들아'라고 한 것은 어미에게는 자녀양육의 책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양육의 책임이 어미에게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교육은 물론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궁극적인 책임은 ?! 틤澍"?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비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습니다. 대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아비들은 자녀교육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귀에게 자녀들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작년에 '조승희'란 재미교포 대학생이 32명의 학생들을 총으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8살에 이민 간 그는 말이 없고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초등학교 때부터 늘 왕따를 당해왔습니다. 부모는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잘 살아보기 위해 밤낮으로 일만 했습니다.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공부는 워낙 잘했지만 내성적이었다', '말이 너무 없었다', '그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많았고 발음이 이상하다고 놀림을 당했다', '밤마다 혼자 밥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늘 혼자였습니다. 버지니아 공대를 들어갈 정도로 수학천재였던 그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집 안에서만 지내면서 폭력 영화나 잔인한 인터넷 게임, 판타지 소설 등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마귀에게 자식을 빼앗긴 것입니다. 일류대학에 다니면 무엇 합니까? ?! ? 영혼을 마귀에게 팔아버렸는데 말입니다. 그는 마귀가 시키는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아버지들은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이 평균 35초라고 합니다. 기껏해야 '공부해라', '학교가라', '밥 먹어라'입니다. 이 말이 끝나면 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요즘 너의 마음이 어떠니?',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니?', '네 마음이 많이 힘들겠구나' 같은 위로와 격려의 말은 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행의 뿌리는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부재현상에 있다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동성연애자들, 알콜 중독자들, 이들의 가장 보편적인 원인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에 있다고 합니다. 로마의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가 말하기를 가정의 붕과가 사회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애국자들이여,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아비들은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까? 부모 된 우리가 먼저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들이 기도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부모된 우리가 먼저 기도하?! ?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정직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부모된 우리가 먼저 정직하게 사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앞모습만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1890 년 평양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폈던 마포상열 선교사는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그는 자녀들과 함께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곤 했습니다. 경건한 부모의 신앙생활은 훗날 자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아들의 회고담 속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을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지금도 그 때 두 분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 형제들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하는 간절한 기도였다." 그 결과 다섯 명의 아들들이 다 선교사가 되었고, 그 후손들도 신앙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왜 자녀들이 화를 낼까요? -

1 )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의 한 여성지가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조심해야 할 다섯 가지 말'을 발표했습니다. 첫째 "너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어." 이 말은 자녀에게서의 삶의 의미를 빼앗아 가는 저주의 말입니다. 둘째 "너는 왜 다른 애들처럼 못하니?" 이렇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말하면 자녀는 금방 부모에게 반감을 갖는다고 합니다. 셋째 "네가 도대체 몇 살이니?" 정신연령을 거론하면 그 아이는 점점 비관주의자가 됩니다. 넷째 "이 바보야." 바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항상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다섯째 "시끄러워. 제발 엄마를 괴롭히지 마라."

 자녀들은 항상 엄마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원합니다. 그런데 대화를 거부하면 그 아이는 점점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합니다. 자녀의 성격과 인격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어머니입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첫 번째 만나는 스승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언제나 자녀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며 자녀들을 축복하는 말을 하시길 바랍니다. "네가 !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너는 참으로 가치 있는 존재란다. 엄마는 참으로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말하십시오. 어머니의 말이 아이들에게 힘이 됩니다.

 공부를 못해서 매를 맞아 빨갛게 부어오른 아인슈타인의 손에 입을 맞추며 "사랑하는 아들아, 너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 있다. 너는 반드시 훌륭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말대로 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잠재력을 깨워서 천재로 만든 것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미국의 홉킨스 대학의 유명한 벤카슨 박사는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자란 흑인이지만, 세계적인 의학자입니다. 늘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백인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였으며 초등학교 때는 항상 꼴찌를 도맡아하는 지진아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쇼나 카슨은 꼴찌를 하고 돌아와도 "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노력만 하면 할 수 있어!" 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격려와 용기가 벤 카슨을 세계적인 의학자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배경에는 반드시 성공을 할! 수 있도록 '성공의 말'을 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의 배후에는 그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행복의 말'을 해 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만큼 말은 중요한 것입니다.

2) 부모가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자녀들에게 잘못을 하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을 때입니다.

4) 자녀들을 사랑으로 다스리지 않고 폭력으로 다스릴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말과 행위로 자녀를 양육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자녀를 양육하려면 부모 자신이 믿음의 말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 자신이 행위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자녀에게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간디 집안의 중요한 가치관이 '정직'이었다고 합니다. 간디의 손자 아룬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차를 수리하게 되었습니다. 오후 5시까지 아버지의 사무실에 돌아오기로 아버지와 약속했습니다. 정오에 정비소에 도착한 그에게 너무 많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그는 동시 상영? 영화 2편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그는 아! 버지와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을 넘겨, 6시 5분에 아버지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왜, 늦었느냐?"고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그는 얼떨결에 "차수리가 늦었어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이미 아버지는 정비소에 전화하여 정비가 언제 끝났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잠시 묵도한 후 "알았다, 너는 내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거라. 나는 집에 까지 걸어 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무려 15km의 거리였습니다. "아니, 왜요?"라고 묻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침착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얼마나 자녀들을 잘못 교육시켰는지를 반성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들아, 나를 용서해다오, 나는 걸어가며 정직의 교훈을 묵상해야 되겠다." 아들이 거짓말을 했을 때,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들에게 용서를 빌면서 그 먼 거리를 '정직'을 묵상하면서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 이 간디의 손자 아룬은 어떤 교훈을 배웠을까요? 일생을 통해 그날 이후 그는 다시는 거짓말을 안했다고 합니다. 이런 훌륭한 부모의 가정교육이 있었기에 이런 훌! 륭한 인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혹시 한 가지라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십시오. 아브라함처럼 자손들에게 성공적인 양육을 하기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기를 원합니까?

 부모 된 우리가 먼저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들이 기도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부모 된 우리가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정직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부모 된 우리가 먼저 정직하게 사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 시킨 사람



 본문 / 사무엘하 9:1~8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입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우는 사자와 같이 한 사람이라도 더 삼키려고 발악을 하며 찾아 헤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어두운 시대인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문이나 TV, 방송 매체에서는 매일같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두운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때에는 세상에 관심을 두고 살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날마다 신문, TV, 방송매체에서 나오는 소식을 보고 듣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골치가 아프고 살 맛 없어집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강을 잃어버려 육신도 마음도 병들기 쉽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보다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문을 보거나 TV 앞에 앉아 있기 보다는 성경을 !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위대한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어려운 때에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축복 받았고,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 돌렸는가 관심을 가지 고 연구해 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신앙에 도움이 되고 우리의 심령은 윤택하여 질 것입니다. 기쁨과 감사와 평강이 넘치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축복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일평생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 무엇일까요?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복, 이 복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이 복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만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모든 복이 따라 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 다윗

 다윗은 어떻게 이런 큰 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믿?! 습?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됩니다. 또한 믿음이 좋아질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다 들어주시고, 하나님은 이들을 높이 쓰시는 것입니다.? ?

 다윗은 사울왕의 사위요, 충성스런 신하요, 구국공신입니다. 이 사울이 가장 신뢰할 수 있고, 가장 사랑했던 인물이 다윗입니다. 그러나 이 다윗의 인기가 사울왕보다 더 높아지자, 위기의식을 가지고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악독한 마음을 품자, 그의 마음 속에 있던 하나님은 떠나고 악신이 들어와 사울의 마음을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의 마음 속에 들어와 악한 생각을 하게 하고, 악한 마음을 품게 하고, 악한 말을 하게 하고, 악한 행동을 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이런 현실에 부딪히면 참으로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악신이 들어와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을 넣어주니, 그 마음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 평소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얼마나 많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며 사? 苛歐??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便)'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마음이 매 시간마다 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 몸에 악신이 들어와 집을 짓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언제나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계시도록 마음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결사적으로 따라다녔지만, 다윗은 사울을 미워하지도 않고 사울을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씩이나 주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긴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전쟁에 패해서 아들들과 함께 죽었을 때, 토막 난 시체를 모아서 장례식을 치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엄청난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 주어 잘 살게 해 주었습니다. 더구나 사울의 손자 가운데 두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는 므비보셋을 친아들처럼 여기고, 항상 다윗의 밥상에서 식사하게 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이 세상에 다윗 같은 사람을 몇 명이나 찾아 볼 수 있을까요? 참으로 다윗은 하나?! 纛? 감동시킨 사람인 것입니다. 다윗의 행동을 보고 감동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예수 믿는 사람이 본받아야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므비보셋 같이 두 다리를 저는 장애인은 생활의 불편함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멸시와 천대입니다. 이것은 장애인들의 가슴에 못 박는 고통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를 친아들처럼 왕궁에서 다윗과 함께 식사하는 영광을 가지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지닌 다윗

 오늘 본문 사무엘하 9:5~8을 보면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 堅? 하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모습입니까?

 시편 18:25~26을 보면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라고 말합니다.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움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비를 베풀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다윗이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성품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은총을 베풀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히브리어로는 '헤세드' 즉 '자비'라는 뜻입니다. 이 '자비'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의 하나입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자비롭고 인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그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루즈벨트가 한창 정치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39세의 나이에 그는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려 보행이 곤란했습니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고정 시킨 채 휠체어를 타?! ? 다녀야 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루즈벨트가 방에서만 지내는 것을 지켜보던 아내 엘레나여사는 비가 그치고 날씨가 맑게 갠 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을 산책했습니다. "비 온 뒤에는 이렇게 맑은 날이 와요. 당신도 마찬가지랍니다. 뜻하지 않는 병으로 다리는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어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아내의 이 말에 루즈벨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난 영원한 불구자요,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소?" 그러자 아내인 엘레나 여사는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내가 지금까지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이 아내의 재치 있는 말 한마디가 루즈벨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비록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었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경제공황을 뉴딜정책으로 잘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미국 역사에서 위대하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말 한마디가 죽을 사람을 살립니다. 말 한 마디로 절망에 빠진 사람을 일으킵니다. 특별히 인자한 말 한마디를 할 때, 보약이 되고 축복이 됩?! 求?.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고 우리 모두가 건강한 신앙인으로서 살 아가려고 하면, 자비를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애들러 박사는 그에게 찾아 온 우울증 환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주간만 나의 처방을 따른다면 당신은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그 처방이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를 궁리해서 그걸 실천하면 됩니다." 값비싼 약이나 까다로운 처방을 기대한 사람은 그 싱거운 처방에 실망하고 돌아갔지만, 그러나 그의 처방을 따른 사람은 당장 특효가 나타났습니다. 그 처방대로 남을 돕고 어려운 이웃 사람에게 사랑을 전했더니 우울증이 없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해 지려면 애들러 박사의 처방대로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장애인에게 베푼 예수님의 사랑

 마태복음 15:29~31을 보면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 척?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다리 저는 사람, 말 못하는 사람 등 여러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예수님 앞에 데려 갔을 때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게 되고,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게 되고,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면, 병든 사람과 장애를 가진 사람을 얼마나 많이 고쳐 주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도 전도도 하고 복음도 전해야 되지만, 예수님처럼 불쌍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에 많은 시간과 물질을 베풀어야 합니다.

 충북 청주에 있는 '중부명성교회'에 최대성 장로라는 분이 계십니다. 2005년도에 연세가 55세인 장로님이 대학교 입학을 했습니다. 청소년 문화 복지과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장로님에게는 27살이 된 '주영'이라는 딸이 있는데, 이 딸과 같이 입학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딸은 중증의 지체 장애 1급의 장애인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녀는 초등학교부터 어머니가 이 딸이 가는 곳마다 따라 다녔습니 다. 혼자서 밥을 떠먹을 수 없기에 먹여줘야 했고, 화장실도 혼자서 못가니까 언제나 딸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어머니는 고등학교까지 딸 주영이의 공부를 마쳤습니다. 아내가 고생하는 것을 본 장로님은 대학생이 딸의 뒷바라지는 본인이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에 같이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야지 딸을 언제나 곁에 두고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퇴직금 중 2,000만원을 들여 장애인을 위한 특수 버스를 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단체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특별한 버스였습니다. 장로님은 한 달에 두 번씩 장애로 인해 집밖에 나가지 못하는 재가 장애인들을 버스에 싣고 한강, 해수욕장, 동물원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자가용이 없는 휠체어 장애인들은 평생 여행 한번 다니지 못할 뿐더러 외출 한번 어렵다는 현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장애인은 사십 평생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 한 번 해 본적이 없는데, 장로님 덕분에 여행을 해본 게 처음이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최장로님은 "나의 딸 주영이만 아니었다면, 나도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을 것입니다. 내 딸 ! 주영이를 지체 장애자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이렇게 장애인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장로님은 지금도 장애인 사역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의 영향을 받아 이 교회도 휠체어 장애인이 예배당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교회 예산의 65%를 장애인을 위해서 쓴다고 합니다. 장로님의 소원은 사랑하는 딸 주영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중증 장애인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그룹 홈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최장로님과 같은 분이 나오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할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빚진자

 다윗이 이렇게 자비를 베푼 것은 빚진자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나단에게 사랑의 빚을 진 자입니다. 오늘 본문 1절과 7절에 보면,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다윗이 그에게 이르?! ?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 ?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고 했습니다.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은총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진 그 사랑의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원수 집안의 자손이었던 므비보셋에게 자비를 베푼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빚진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진노를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죄로 물든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주님의 자녀들을 모든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저와 여러분은 모두다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자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빚진자의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빚을 갚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천재로 불리는 한 청소년이 있었습니다.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그의 인생은 오르막길이었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기대한대로 하버드 대학 교수?! ? 되고, 그가 쓴 책 30여 권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보기 위해 몰려 올 만큼 그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나는 교수직을 포기한다. 이제 정박아 시설에 들어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 갈 것이다."그러자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 왜 그 많은 명예와 보수를 버리려고 하는가. 차라리 후학을 양성하라."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르막길 인생은 성공과 칭찬에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낮은 곳에서 예수를 만날 것이다." 그는 인생의 말년을 메사추세츠 정박아 시설에서 장애인들의 용변, 식사, 목욕 등을 돌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바로 '상처 입은 치유자'를 쓴 헨리 나우웬입니다.

 저는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에서 영광 받으려고 하고,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은 곳'에 가서 병든 사람, 장애인들, 어려움 당한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은 다윗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성도


 본문 / 데살로니가 전서 5:19~22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가 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보혜사가 되시는 성령님을 하나님의 영, 혹은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8:9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로마서 8:14~17을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자녀일까요? 위의 14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3:5에 보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인인 니고데모에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서 어머니의 자녀가 된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3:16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또 고린도 전서 6:19~20을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까? 누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누가 진정한 천국시민입니까? 자신의 몸 안에 성령이 계셔서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요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일평생 교회를 다녔을지라도 그 사람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천국 시민이 아닌 것입니다.

 유다서 1:17~19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건하지도 않으며, 정욕대로 살고, 조롱하고, 분열을 일으켜 교회를 쑥밭으로 만듭니다.

 고린도 전서 2:14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에 천국 시민이 될 수 없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일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역사하심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일은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만에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오셔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고린도 전서 13:5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18에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4:25~26에서는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26에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몰라 기도 생활을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너무 바빠서, 어리석어서 기도를 못합니다. 그 때, 성령께서 여러분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탄식하므로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령님은 보혜사입니다. 우리를 위한 변호사가 되기도 하고, 우리의 보호자가 되기도 하십니다. 항상 지켜주시고, 항상 인도하시고, 항상 책임져 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살아야 합니다.

 누구나 진심으로 예수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반드시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삶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성품이 변합니다. 언행이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 11~12 말씀처럼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게 됩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변화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점점 더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게 되고, 악은 버리게 되어 우리의 삶이 아름답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몸 관리를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을 선한 도구로 사용하도록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죄 짓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의 몸은 사랑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도구가 되기 위해 몸 관리를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마음의 지배를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냐에 따라 선한 도구가 될 수 있고, 악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냐에 따라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몸이 될 수 있고, 죽이는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따라서 우리의 몸이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영의 지배를 받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되면, 그 마음이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진실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령이 지배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은 악해지고 강팍해집니다. 비양심적이고 음란하고 더럽고 교만해집니다. 우리의 마음을 누가 지배하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의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는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하기 쉽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타락의 본성과 부패한 본성 그리고 죄악의 근성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르게 지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알콜 중독자와 결혼한 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수 년 동안 자신의 노력으로 남편을 변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의지가 강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남편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목욕탕 속에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제 생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저를 맡아 주십시오. 제가 아무 것도 조정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결혼 생활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둘 다 변하게 된 것입니다. 변화는 천천히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남편에게 마음을 쏟아 놓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필요로 하며, 그의 삶에서 우선 순위가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의 남편이 술을 끊을 새로운 동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그를 금주단체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술을 끊은 지 7년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이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경하며 너무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 柳石? 이렇게 말합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목욕탕에서 울면서 기도할 때, 내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의 습관이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언행이 달라졌습니다. 내가 달라지자 놀랍게도 가족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은 마음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새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일본인 고오찌 요시다로오는 17세 때 주인의 돈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18세 되던 해에는 주인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후 그녀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밤에 꿈을 꾸는데 환한 빛이 비취더니 천사가 그에게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다. 지금 내가 네게 보여 주는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행하여라." 천사는 그에게 커다란 성경을 펼쳐 보여 주고는 곧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그는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성경을 구했습니다. 그는 밤낮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읽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죄인들도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후 교도소 안에는 일대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고오찌 요시다로오의 변화는 물론이요, 그와 동일하게 무서운 죄를 지은 죄인들이 하나 둘 변화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은 모든 죄수들의 공동 소유물로써 그들로부터 가장 소중하?! ? 여겨지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도소 안을 변화시킨 장본인이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오찌 요시다로오는 모범수로 특사를 받아 가출옥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성령을 소멸히 말라(본문 19절)』고 했습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령을 경험한 분들은 느꼈을 겁니다. 성령이 임할 때, 성령의 은혜를 받을 때는 몸에 감동이 오고, 온 몸이 불이 붙는 것처럼 뜨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성령을 기쁨으로 받아드리며 감사하십시오.


 성령님은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존귀하신 분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대할 때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면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놀라운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가 가야 할 가장 좋은 길을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좋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축복을 받습니다.

1873 년, 뉴욕을 향해하던 로크 애른호라는 배가 조정타의 고장과 강한 바람으로 인해 정상 항로에서 훨씬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배는 점점 물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선장은 하루 내에 이 배가 가라앉을 거라고 승객들에게 발표하였습니다. 그 배에는 쿡이라고 하는 경건한 목사 한 분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기도를 한 후에 말했습니다.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구조하실 거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아침이 되자 물은 승객들의 무릎까지 차올랐으며, 곧 배가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브리티쉬 퀸호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을 구조하였습니다. 전날 밤, 그리스도인이었던 브리티쉬 퀸호의 선장은 자기가 해야 할 특별한 일이 누군가를 구조해야 할 일이라는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내적인 음성을 들었습니다. "북쪽으로 선회하라." 그는 그 배를 한층 더 북쪽으로 선회시켰고 최고 속력으로 밤새 달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동이 틀 무렵, 망을 보던 선원이 "앞에 배가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곳에 로크 에른호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 《燦?고 있는 배를 만난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선장 한사람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구조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성령의 음성을 들으신 경험이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싶으나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라.

 둘째,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종할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셋째, 주님 말씀대로만 순종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구하라

 저는 주의 음성을 들은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강도사 시험을 치르려고 준비할 무렵이었습니다. 신학교에 가기 전에는 몰랐는데, 신학교를 다니면서 보니 훌륭한 목사님들 중에 넘어지는 분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이 넘어지는 것을 볼 때, 저는 목회자의 길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평신도로 주를 위해 살아야지 나 같은 사람이 목사가 되어 하나님 망신이나 시키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앞두고 청계산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목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님이 이 길을 가라고 하면 갈 것이고, 가지 말라고 하시면 그만 두겠습니다. 말씀 한 마디만 해 주십시오." 시험 칠 날은 가까워 오는데, 전 응답을 받기 위해 계속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월요일에 금식기도를 시작했는데 목요일이 되었습니다. 그 날은 비가 왔습니다. 산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 한 손은 우산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금식기도 한다면서 비를 ! 안 맞으려고 우산을 들고 기도하는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산을 던져버리고 비를 맞아 가면서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순종하겠나이다." 그때 비로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목사가 되라."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책임을 지는 분이십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이 시험을 쳤는데 11명만 합격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니 오라는 데가 너무 많았습니다. 예배당을 지어 주겠다고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니 얼마나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지 모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에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그리하면 성령께서 기뻐하시고 더욱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가장 좋은 길,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들도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평생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온전히 거룩한 성도



 본문 / 데살로니가 전서 5:23~28


 사람들은 누구나 소원이 있습니다. 소원은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욕심에서 나온 소원이고, 하나는 믿음에서 나온 소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욕심에서 나온 소원이 이루어지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소원이 이루어질 때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감은 잠시입니다. 이런 소원은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릿? 사람들은 더 큰 행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에서 나온 소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에서 나온 소원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고,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오늘 본문 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에서 나오는 좋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소원일 뿐만 아니라 믿음을 가진 자는 누구나 가져야 할 소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 믿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여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인류가 둘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 앞에 서게 될 사람들과 예수님 앞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앞에 서게 될 사람들은 주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좋을까요! 기쁘고 좋아서 눈물을 흘리면서 찬송을 부르고, 춤을 추면서 주 앞에 나갈 것입니다. 그런 ! 뒤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맞이? 狗? 나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남는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이를 갈며 통곡을 할 것입니다. 당장은 고난 가운데서 어렵게 산다고 할지라도 예수님 앞에 서게 된다면 이 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이런 복은 세상 어떤 복보다 귀한 복이요 큰 복입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온전히 거룩한 모습으로, 영과 혼과 몸이 흠 없는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는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거룩하게 살기가 너무나 어려운 세상입니다.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입니다. 음란하고 더러운 세상입니다. 유혹이 많은 세상입니다. 전반적으로 문화가 잘못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자들이 신앙생활을 하기란 갈수록 어렵습니다. 요즘은 아파트 입주와 동시에 케이블 TV가 바로 설치됩니다.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는 방송은 청소년들은 물론 어린 아이들의 정서까지 병들게 해서 모방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가 되어서 이 문제를 꼭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들은 생활 패턴이 달라야 합니다. 신문이나 인터넷 방송, TV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서! 는 안 됩니다. 세상 소식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마치 내 문제인 것처럼 생각됩니다. 해결 방안도 없으면서 괜히 걱정하고, 고민하고, 이로 인해 불안해지고, 심지어는 스트레스까지 쌓여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방송만 틀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항상 주님만 생각하며 은혜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거룩하게 하옵소서 -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7:14~19을 보면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 립뻥?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 킹完構?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에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은 헬라어로 '하기오스'라는 단어인데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소극적으로는 세속으로부터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죄로부터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소원이요 성도들의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거룩'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거룩'이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께 '장사 잘되게 해 주세요.'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 '부자 되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만 하지 말고 '하나님이여, 나를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23절에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영'은 하나님의 형?! 瓚? 일컫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사람은 타락할수록 마귀의 형상을 갖게 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혼'은 우리의 이성, 마음, 양심을 가리키고, 몸은 육체를 가리킵니다. 우리의 '혼'은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육체의 지배를 받아야만 건강한 사람이 되고, 훌륭한 인격을 가진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몸이 혼을 지배하고 혼이 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정욕이 발달하면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나쁜 짓을 하여 마귀의 영에게 사로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처럼 몸의 지배를 받으면 안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성령이 없습니다.

 유다서 1:19을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고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5:24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믿는 그 순간에 이미 영생을 얻었습니다.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은혜를 받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고 점점 더 거룩해 집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점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변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하여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점점 더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변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버릇과 습관이 남아 있고, 아직도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고, 음란한 영화나 TV를 봅니다. 또 세속 음악 듣는 것을 즐깁니다. 이런 것들이 나쁜 ! 생각을 갖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더럽게 합니다.

 사무엘 스마일스라는 사람은 일찍이 말하기를 '생각이 씨 뿌려지면 행동의 열매를 거두고/ 행동이 씨 뿌려지면 습관의 열매를 거두고/ 습관이 씨 뿌려지면 인격의 열매를 거두고/ 인격을 씨 뿌리면 우리의 미래, 장래, 운명을 결정짓는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시작은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만큼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이 나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고,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이 습관은 사람의 인격을 보여 줍니다. 사람의 인격으로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습관은 빨리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거닐며 40년간을 헤매일 때, 그들에게는 애굽에 살 때부터 있었던 노예 근성, 타락의 근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고치느라 40년이란 시련의 기간을 거쳤습니다. 그런 뒤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좀 빨리 고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거룩해 지려면 끊을 것은 끊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선한 일을 기뻐해야 합니다. ! 사랑해야 할 사람들은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온전히 거룩 하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우리가 온전히 거룩해지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5:7~9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순종함으로써 온전케 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온전히 거룩한 자가 되고, 우리의 몸과 영과 혼이 예수님이 강림하시는 날까지 흠 없게 보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1의 말씀처럼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겠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목표요, 소원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소원은 바로 이! 것입니다. 하나님을 성품을 닮아가기 위한 소원, 하나님처럼 거룩해지기를 바라는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런 소원을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러한 소원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미쁘신 하나님이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

 주님 재림하실 때, 어떤 모습으로 서기를 원하십니까? 온전히 거룩한 모습, 영과 혼과 몸이 흠 없는 모습으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이런 소원을 가졌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런 소원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미술시간에 그림을 못 그려서 줄만 긋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아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본 선생님이 가까이 오시더니 그 어린 아이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얘야,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속상해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도와줄게."하시면서 선생 님은 아이에게 크레파스를 단단히 쥐게 하고, 선생님은 그 아이의 손을 감싸 쥐었습니다. 선생님의 손이 아이의 손을 인도하여 이리저리 선을 긋자 아이의 눈앞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이 살아난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지금 자기 손이 선생님의 큰 손에 잡힌 것도 잊고 마치 자기가 그림을 그린 것처럼 마냥 기뻐했습니다.

 그림은 잘 그리고 싶은데 잘 안 되서 우는 아이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거룩하게 살아보려고 하지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큰 손이 우리를 붙잡고 인도하시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

 미국의 의과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이 대학 3학년 때 마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인턴 과정,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서 의사로 일하면서도 마약을 끊지를 못했습니다. 결국에는 마약을 한 사실이 알려져서 병원에서도 쫓겨나고 아무도 이 학생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직장을 잃어 돈이 없는 그녀는 ! 마약을 살 수 없는 가난뱅이가 되어버리자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마약을 끊어보려고 피나는 노력을 다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비오는 어느 날, 그녀는 자살을 결심하고 비를 맞으며 저수지 뚝으로 올라갔습니다. 뚝 위에 올라가서 지금껏 단 한 번도 불러 본적이 없는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더니 전신에 뜨거움이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양어깨를 누르고 있던 짐을 누군가가 양손으로 거두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간 그녀는 날듯이 온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넘쳐 났습니다. 그녀는 자살하려는 마음을 돌이켜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깨끗이 마약을 끊어 버렸고, 지금은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삶을 포기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온전히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기도!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해야겠는데 바빠서 못하시는 분도 기도하는 방법이 있 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일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약 빨래를 한다면 '주여, 내가 이 옷들을 깨끗하게 빠는 동안 내 속에 들어 있는 더러운 모든 죄도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논밭에서 김을 매며 잡초를 뽑을 때면 '오, 주여. 내 속에 있는 죄악의 풀과 가라지를 뿌리 채 뽑아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밥을 푸면서도 축복 기도하고. 길을 가면서도 기도하십시오.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이 세상이 아무리 부패하고 악해도 거룩한 모습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합니다. 본문 25~27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도 우리와 똑같이 넘어지기 쉽고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바르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와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해?! ?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27을 보면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28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사도 바울이 축도함으로써 데살로니가 전서를 마쳤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면서, 이 마지막 때를 온전히 거룩함으로 살다가 주님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온전히 거룩하여질 수 있습니다.?